샬럿 퍼킨스 길먼의 단편 영한 대역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내가 남자였을 때>는 남자가 되고 싶어 하던 몰리가 어느 날 갑자기 바라던 대로 남자가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샬럿 퍼킨스 길먼은 여성이 남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됐을 때 달라지는 변화를 통해 당시 남성이 가졌던 특권과 여성을 향한 차별적 시선을 날카롭게 묘사합니다.
‘여성은 배려 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 ‘신체상 남자를 넘을 수 없는 성별’, ‘보석과 옷을 좋아하고 돈을 밝히는 속물’.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1914년에 발표된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편견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가장 깊이 뿌리내린 차별은 물리적 폭력도, 구조적 편견도 아닌, 우리의 머릿속에 뿌리내린 차별적 인식임을 시사합니다. 샬럿 퍼킨스 길먼의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은 통찰력은 뿌리 뽑지 못한 차별이 숙제로 남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이 작품을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샬럿 퍼킨스 길먼 영한 대역 시리즈’는 작품 소개, 작품 읽기(영한 대역), 영문으로 읽기, 한글 번역문 읽기, 샬럿 퍼킨스 길먼의 삶, 번역 요령까지 총 여섯 챕터로 구성돼 있습니다. 책을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원하는 챕터만 골라서 읽어도 좋습니다.
샬럿 퍼킨스 길먼 Charlotte Perkins Gilman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주장했던 페미니스트이자 사회 개혁가. 1860년 7월 3일, 코네티컷 하트퍼드에서 태어난 길먼은 친척 집을 전전하는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규 교육은 4년밖에 받지 못해서 주로 독학으로 공부했고, 대학을 다닐 때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명함 화가, 가정 교사 등 다양한 일을 했다.
1884년에 예술가 찰스 월터 스테트슨을 만나 결혼했고, 다음 해 딸을 낳고 몇 년간 심각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휴식 요법’을 처방받아 지적 활동을 제한당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월간 문학 잡지인 〈뉴 잉글랜드 매거진〉 1월 호에 단편 소설 〈누런 벽지(The Yellow Wallpaper)〉를 실었다.
1894년에 남편과 공식적으로 이혼한 후 딸과 함께 캘리포니아 패서디나로 가서 왕성한 저술 활동을 시작하며 사회 개혁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896년에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 여성 참정권 협회의 대회와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 사회주의 노동자 회의 모두 캘리포니아 대표로 참가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단편 소설 〈누런 벽지〉, 여성은 경제적 자유를 확보해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 논문 〈여성과 경제(Women and Economics)〉, 페미니즘 유토피아를 다룬 장편 소설 〈허랜드(Herland)〉가 있다. 1909년에는 월간 잡지 〈선구자(The Forerunner)〉를 창간하여 사설, 비평, 서평, 시, 단편 소설, 장편 소설 등 다양한 글을 썼다. 《내가 마녀였을 때》에 실린 작품들 또한 모두 〈선구자〉에 실린 작품이다.
1932년 1월, 길먼은 말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불치의 환자에 대한 안락사 옹호자였던 그는 그로부터 3년 후 1935년 8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75세에 생을 마감했다.
1960년대 여성 운동이 등장하며 길먼의 작품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3년 시에나 연구 기관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6위에 선정됐고, 1994년에는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옮긴이 장지원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이 언어의 벽에 가로막히지 않도록 다리가 되어주고 싶은 번역가. 영상 번역 회사에서 감수 직원으로 번역 일을 시작했고, 이후 프리랜서 번역가로 영화, 다큐멘터리,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의 영상 번역을 하고 있다. <누런 벽지>로 도서 번역에 첫발을 디뎠으며, 그 외 옮긴 책으로는 <내가 마녀였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