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녀였을 때, 세상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회 구조를 전복하는 상상력과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절묘하게 결합한
샬롯 퍼킨스 길먼의 단편소설집
현대 페미니즘의 예언자이자 선구자로 불리는 샬롯 퍼킨스 길먼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참정권을 얻는 것보다 더 크고 근본적인 여성의 해방을 고민했다. 《내가 마녀였을 때》에 실린 작품들은 시대를 앞서갔던 그의 상상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단편들로 지금 이 시대에 쓰여졌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생생하다.
마녀의 모습으로 기울어진 세상을 비웃는 <내가 마녀였을 때>, 독박 육아와 공동육아에 대한 급진적 상상력이 담긴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 남편의 아이를 가진 여성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로 맞이하는 <전화위복>, 배우자의 죽음으로 비로소 결혼이라는 억압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노인 여성이 등장하는 <과부의 힘>, 의료계의 성 편견을 꼬집는 <누련 벽지> 등 예상치 못한 반전을 일으키며 우리를 놀라게 한다.
‘폐쇄적인 가족주의와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서사’가 여전히 가득한 21세기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샬롯 퍼킨스 길먼의 세계는 우리에게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샬롯 퍼킨스 길먼 Charlotte Perkins Gilman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주장했던 페미니스트이자 사회 개혁가. 1860년 7월 3일, 코네티컷 하트퍼드에서 태어난 길먼은 친척 집을 전전하는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규 교육은 4년밖에 받지 못해서 주로 독학으로 공부했고, 대학을 다닐 때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명함 화가, 가정 교사 등 다양한 일을 했다.
1884년에 예술가 찰스 월터 스테트슨을 만나 결혼했고, 다음 해 딸을 낳고 몇 년간 심각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휴식 요법’을 처방받아 지적 활동을 제한당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월간 문학 잡지인 〈뉴 잉글랜드 매거진〉 1월 호에 단편 소설 〈누런 벽지(The Yellow Wallpaper)〉를 실었다.
1894년에 남편과 공식적으로 이혼한 후 딸과 함께 캘리포니아 패서디나로 가서 왕성한 저술 활동을 시작하며 사회 개혁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896년에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 여성 참정권 협회의 대회와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 사회주의 노동자 회의 모두 캘리포니아 대표로 참가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단편 소설 〈누런 벽지〉, 여성은 경제적 자유를 확보해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 논문 〈여성과 경제(Women and Economics)〉, 페미니즘 유토피아를 다룬 장편 소설 〈허랜드(Herland)〉가 있다. 1909년에는 월간 잡지 〈선구자(The Forerunner)〉를 창간하여 사설, 비평, 서평, 시, 단편 소설, 장편 소설 등 다양한 글을 썼다. 《내가 마녀였을 때》에 실린 작품들 또한 모두 〈선구자〉에 실린 작품이다.
1932년 1월, 길먼은 말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불치의 환자에 대한 안락사 옹호자였던 그는 그로부터 3년 후 1935년 8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75세에 생을 마감했다.
1960년대 여성 운동이 등장하며 길먼의 작품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3년 시에나 연구 기관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6위에 선정됐고, 1994년에는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옮긴이 장지원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이 언어의 벽에 가로막히지 않도록 다리가 되어주고 싶은 번역가. 옮긴 책으로는 샬롯 퍼킨스 길먼의 단편 <누런 벽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