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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보낸 일주일: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

영국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영어의 매력에 빠져 있던 학창 시절, 대학교 입학식을 앞둔 고3 겨울 방학에 나는 전기장판 위에 누워 두툼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새벽까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곤 했다. 소설 속 두 남녀의 흥미진진한 연애 스토리에 오히려 잠이 깨는 기분이었다. 서툴러서 더욱 애틋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니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달까. 나는 동이 틀 때까지 두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고 소설 속 두 사람은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며 결혼에 골인했다. 몇 년 뒤, 나는 소설 속 엘리자베스〮다아시 커플과 재회했다. 대학 친구가 추천한 영국 드라마<오만과 편견 다시 쓰기(Lost In Austen)>는 나를 미스터 다아시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도..
영국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영어의 매력에 빠져 있던 학창 시절, 대학교 입학식을 앞둔 고3 겨울 방학에 나는 전기장판 위에 누워 두툼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새벽까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곤 했다. 소설 속 두 남녀의 흥미진진한 연애 스토리에 오히려 잠이 깨는 기분이었다. 서툴러서 더욱 애틋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니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달까. 나는 동이 틀 때까지 두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고 소설 속 두 사람은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며 결혼에 골인했다.
몇 년 뒤, 나는 소설 속 엘리자베스〮다아시 커플과 재회했다. 대학 친구가 추천한 영국 드라마<오만과 편견 다시 쓰기(Lost In Austen)>는 나를 미스터 다아시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주제가 ‘다시 쓰기’다 보니 원작과는 조금 다른 내용으로 이야기가 진행됐지만 드라마의 배경이 된 아름다운 영국 교외 지역과 세련된 도심 풍경은 내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영국 남자가 하면 더 멋있다는 영국 영어까지, 모든 게 매력적이었다. 그래, 이건 영국에 가야 한다는 신호였다.
대학 교환학생 프로그램 또한 나와 영국의 운명론을 더욱 확고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런던은 아니었지만, 영국 남서부에 위치한 웨일즈로 1년에 한 번, 전교에서 단 두 명만 선발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듣자마자 이건 나를 위한 자리라 생각했다. 프로그램에 지원하려면 공인 영어 성적이 필요했는데, 나는 휴학 신청까지 한 뒤 기준 점수를 받아내기 위해 매일 같이 서울로 학원을 다녔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나는 지원 기준 점수에 6점 미달하는 성적을 받았다. 서둘러 재시험에 응시한다 해도 성적 발표일까지 기다리기엔 접수 일정을 맞출 수 없는 데다 휴학을 반 년 더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는 1년에 단 한 번 있는 선발 지원 기회를 놓쳤고, 남자친구와 헤어졌던 날보다 더 크게 울었다.
결국 재시험에 응시해 원하는 점수를 얻어냈지만, 영국이 아닌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나면서 나는 좀 더 미국적인 감성에 젖어 들었고 미스터 다아시는 점차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땐 동부 사람이냐, 영국에서 왔냐는 질문을 받았을 정도로 미주 지역을 처음 방문한 내게는 찬사와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소설과 드라마 덕분에 알게 된 영국 영어의 매력에 빠져 나도 모르게 그들의 말투를 따라 했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미국 생활을 계속할수록 <오만과 편견> 이야기는 물론, 무의식적으로 남아 있던 영국 억양과도 이별을 고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른을 맞이한 2018년 가을, 나는 런던으로 일주일간 여행을 떠났다. 어떻게든 가고 싶은 마음에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아쉬운 결과로 갈 수 없었고, 퇴사 후 유럽 여행을 계획할 때도 영국은 일정과 재정 상황 상 들를 수 없어서 인연이 없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사랑은 돌아오는 거라던 드라마 속 대사처럼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이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내게 왔다. 게다가 고군분투 끝에 원하던 번역가가 되었고, 그것도 패션 분야 번역담당자가 되어 세계적인 패션 도시 런던을 방문하게 되다니, 정말 모든 게 꿈만 같았다. 런던은 어떤 곳일까? 어떤 사람들이 어떤 풍경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여행 전부터 내 마음은 런던을 향한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었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더니, 런던과 나는 아무래도 반드시 만날 운명이었던 것 같다. 런던에서의 일주일은 오드리 햅번이 로마에서 보낸 휴일만큼이나 내게 낭만적인 추억을 선사해 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주는 행복한 기운을 만끽하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정승연

좋아하는 일을 찾아 삶을 여행하는 일상 기록자. 영어의 매력에 빠져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가르치는 직업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한다. 여행이란 현실 도피가 아닌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 믿으며, 오늘도 번역하고 글을 쓰면서 새로운 여행지를 방문할 그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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